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매각하기 위한 본입찰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유력 인수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인수전에 뛰어든 대만 홍하이의 궈타이밍 회장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한 데다, 일본에서는 미일연합이 꾸려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5일 외신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는 예비입찰을 통과한 인수 후보를 대상으로 오는 19일 본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인수 후보들이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실사 등을 거치고 인수가격을 제출하면, 도시바는 이들 중 일부에만 본입찰 참여권을 줄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도시바는 내달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와 대만 훙하이(폭스콘), 미국 브로드컴, 웨스턴디지털(WD) 등 4개 업체가 본입찰 선정에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손에 거머쥐기 위해 막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최태원 SK 회장은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가 풀리자마자 첫 해외 출장지로 일본을 다녀오며 도시바 인수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일본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 도시바 반도체의 주력 거점인 미에현 욧카이치공장에 현지 고용과 투자 유지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핵심 반도체 기술의 유출과 매각으로 인한 고용 불안 등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도시바와 협력관계를 맺어온 웨스턴디지털(WD)과의 교섭 가능성도 나온다. 앞서 최 회장은 일본 출장 일정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처음 현장에 다녀온 것이고, 일본밖에 안 가봐서 전체적으로 어떻다고 하긴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도시바를 인수하기 위해 다른 나라도 방문할 계획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훙하이는 입찰 참가업체 중 가장 높은 3조엔(약 30조원)의 인수가격을 써내며 도시바 인수전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궈타이밍 홍하이 회장은 지난달 말 백악관을 방문해 미국 투자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도시바를 인수하려고 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앞서 궈 회장은 2019년까지 2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새 공장을 지어 1만6000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또 미국의 애플과 아마존, 델, 일본의 샤프와 소프트뱅크 등 미국·일본·대만연합을 결성해 훙하이의 인수 비율을 20%로 낮추겠다는 방안도 제시한 바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와 합작해 1조4000억엔을 투자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동의 없이 제3자에 매각할 수 없다며 독점 교섭권을 요구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스티브 밀리건 웨스턴디지털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언론에 "도시바가 위기를 탈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겠다"며 "도시바의 모든 이해 관계자가 장기적인 이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관민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미국 투자펀드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진 미·일 연합은 1조8000억엔(약 18조2759억원) 규모로 입찰에 참여해 유력한 인수 후보로 부상했다.